방선기 목사(직장사역연구소 소장으로 섬기고 있으며, 몇 년 전에 가정교회를 직접 개척하였다)
지난 2,000년도에
처음 가정교회를 시작할 때 가정교회에 대해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까지는 어느 이단으로 정죄된 교파에서 가정교회를 한다고
했기 때문에 그것으로 오해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런 오해는 사라진 것 같지만 다른 종류의 혼동이 있다. 기존 교회 안에 있는 셀
교회를 가정교회로 부르는 교회들이 있기 때문에 그 가정교회와 혼동하기도 한다. 이렇듯 아직도 가정교회와 관련해서 오해와 혼동이
있지만 그래도 이제는 가정교회에 대한 이해가 조금은 나아진 것 같다. 종종 내게 가정교회에 관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직접
우리 가정교회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 그렇게 느낀다. 그러나 아직 가정교회는 대부분 사람들에게 낯설다. 가정교회를
그저 작은 교회 정도로 여기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가정교회는 기존교회들과 비교할 때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기존교회들의 약점을 보완하는 면이 있다. 가정교회는 단순히 작은 교회가 아니다. 가정교회는 성경이 가르치는 교회를 이
시대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려는 흐름들 중에 하나이다. 기존교회가 많이 있는 지역에서는 이 교회가 좀 색다른 '대안교회'가 되겠지만
기존교회와 같은 형태의 교회를 가질 수 없는 특별한 지역에서는 어찌 보면 유일한 교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극단적인
가정교회들처럼 모든 교회가 가정교회가 된다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지만 가정교회를 교회의 한 형태로 인정하고 공부하고 구체적으로
실천할 필요가 있다.
1. 가정교회의 정의
가정교회는 소규모의 성도들이 가정집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작은 교회다. 앞서 말했듯이 기존교회 안에서 소그룹 구역 조직을 교회의 형태로 만들어서 가정교회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가정교회는
그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가정교회는 가정단위로 이루어진 교회를 의미한다. 기존 교회는 한 가정에 모이기 힘들만큼 커지면 새로운
건물을 얻어서 교회를 확장하지만 가정교회는 분가를 시켜서 교회를 확산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가정교회는 기존 교회와 다른 면이
있다.
2. 가정교회의 특징
가정교회는 성경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가정교회의 기원은 초대교회에서
찾을 수 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는 중에 자기와 동역했던 브리스길리와 아굴라의 집에 모인 교회에게 문안하라고
했다(고전16:19). 그 부부의 집은 교회 공동체의 모임 장소였다. 그들의 가정교회 외에도 다른 예들이 있는데 마리아의
집(행12:12), 루디아의 집(행16:40) 눔바의 집(골4:15), 아킵보의 집(몬1:2) 등이 그것이다.
그
당시의 집이 갖는 의미가 지금과는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예배를 위한 별도의 공간을 사거나 빌리지 않고 집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성경이 그 사례를 보여준다. 교회가 처음 시작될 때의 모습은 '집에 있는 교회" 즉 가정교회였다. 지금처럼 교회를
위해서 예배당이나 별도의 건물이 있는 교회에 익숙해서 그래야만 정상적인 교회로 생각하지만 성경은 생활의 공간인 가정에서 모이더라도
교회의 역할을 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교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가정교회는 기존교회에 비해 훨씬 상호
관계적이다. 교회가 대형화되면서 성도들 간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그래서 교회 내에서 구역조직이나 셀교회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에 비해 가정에서 모이는 교회는 소규모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의 관계가 친밀하다. 특히 예배의 형태에서
차이를 더 느낀다. 기존의 교회에서 예배는 인도하는 분이 앞에 있고 나머지 청중들이 관람하는 형태이다. 서로 간에 관계를 맺기가
어렵다. 그러나 가정교회는 공간이나 형태상 관계적일 수 밖에 없다. 기존교회에서의 종교적인 분위기는 맛볼 수 없지만 하나 됨을
느끼며 예배드릴 수 있다. 그리고 소규모이기 때문에 서로의 생활이 비교적 투명하다. 교회 안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외식이나 위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적다.
가정교회는 현재 우리의 사회적인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필요하다. 지금까지 교회는
별도의 예배공간을 필요로 했으므로 그 공간을 비리거나 사야만 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땅값이 비싼 지역에는 교회를 시작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그리고 무리해서 건물을 사거나 빌린다고 해도 그것을 유지하는데 엄청난 비용이 든다. 재정적으로 풍부한 교회는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렇지 않은 교회는 재정적인 이유로 교회유지가 어려울 수 있다.
유지를 해도 작은 교회의
경우는 헌금의 많은 부분을 부동산 유지비에 사용해야 할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집에서 예배드리는 대안은 현실적으로 의미가 있다.
적어도 재정적으로 여유가 생길 때까지 만이라도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가정교회
는 효율적이다. 기존교회에는 너무 할 일이 많다. 교회 건물을 유지하는데 돈과 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행정적인 필요에 너무 많은
돈과 에너지를 많이 사용한다. 다양한 프로그램이나 행사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나 협조가 필요하다. 기존교회의 열심 있는
성도들은 너무 바빠서 정작 자신의 경건생활을 하지 못하는 마르다와 같은 신앙인이 되기 쉽다. 그러나 가정교회는 교회에서 맡겨진
본질적인 사역에 집중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의 돈과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가정
교회는 선교전략에 필수적이다. 선교지들 중에는 복음을 직접 전하기 어렵거나 기존의 예배당을 지어서 교회개척을 하기 어려운 곳들이
있다. 예배당을 지을 수 없다고 교회를 개척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반기독교 정서가 있는 선교지에서 기독교의 상징인 예배당을
지어 놓고 선굘글 하기보다는 가정에서의 친밀한 모임으로 교회를 시작한다면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교회를 개척할 수
있다. 모슬렘 지역처럼 반기독교 정서가 깔려있는 곳에서는 가정교회는 대안적인 교회라기보다는 아주 전략적으로 필수적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정교회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대안교회이다. 마치 홈스쿨이나 대안학교들이 기존의 학교에 대안으로 나오듯이 가정교회가 기존 교회의 부족함을 보완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가정교회들이 갖는 문제점도 많이 있다.
3. 가정교회의 약점과 한계
현
재 구미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정교회 중에는 기존 교회를 부정하는 극단적인 교회들이 있다. 그들은 초대교회들이 가정교회였던
사실을 강조한 나머지 그 이후에 예배당 건물을 짓고 대형화되는 교회를 배도한 교회로 취급한다. 가정교회가 가장 순수한 교회로
여기며 작은 교회를 이상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는 형태의 차이로 부정할 수는 없다. 기존교회가 가정교회를
부정한다면 그것도 잘못이지만 가정교회가 기존교회를 부정하는 것 역시 잘못이다.
가정교회는 작은 교회의 이점을 가지고
있지만 작은 교회를 고집하는 것은 교회의 참 모습이 아니다. 초대교회는 가정교회였지만 작은 교회는 아니었다. 가정교회의 지체들의
친밀한 교제에 빠져서 교회의 사명을 도외시해서는 안된다. 가정교회는 교회가 감당해야 할 사명을 똑같이 감당해야 한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전도이다. 그러므로 가정교회는 전도에 헌신해야 한다. 가정교회였던 초대교회가 복음을 전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왔다.
다만 전도의 전략이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가정으로 찾아가서 전도하고
가능하면 그 가정을 또 하나의 교회로 시작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전도를 통해서 교회의 성장을 기대한다면 가정교회는 교회의 확산을
기대한다고 할 수 있다. 전도를 통해서 교회를 계속 자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이론적으로 그럴듯한 교회를 주장해도
온전한 교회가 되지 못한다.
가정교회는 기존교회에 비해 약점도 많이 있다. 가장 어려움을 겪는 문제는 자녀들의
신앙교육이다. 가정교회는 기존교회에 있는 주일학교가 없다. 그 대신 자녀들이 어른들과 함께 예배드리며 함께 삶을 나누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신앙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을 기대한다. 예배 모임에서 아이들을 위해서 성경을 가르치는 하지만 가정에서 부모들이
아이들의 신앙교육에 책임을 지도록 한다. 사실 성경적으로 보면 아이들의 신앙교육의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
가정교회에
서 기존교회와 같은 다양한 교육/훈련 프로그램이 없다. 그 대신 공동체의 삶을 통해서 서로 가르치며 서로 배운다. 그렇지만 역시
부족한 부분이 있으므로 다른 교회나 단체들이 제공하는 유익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권한다. 청소년들의 경우 같은 또래들과 교제가
필요하기 때문에 가정교회를 떠나 기존교회에서 양육 받도록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므로 가정교회는 배타적이어서는 안 된다.
기존교회는 물론 다양한 단체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간다.
가정교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기존교회처럼 교회로부터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는 목회자들이 이끌어가기가 어렵다. 교회가 작기 때문에 목회자들에게 충분하게 재정을
공급해줄 수 없다. 그러므로 가정교회는 다른 곳에서 재정의 공급을 받는 목회자나 자비량 목화자들이 할 수 있으며 평신도들 가운데
영적으로 성숙한 성도들이 이끌어 가야만 한다. 이것은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가정교회는
앞으로 선교의 전략의 관점에서는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선교의 경험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가정교회에 대해서 쉽게
단언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모슬렘 선교를 전문으로 하는 프런티어 미션에서 교회개척을 위해서 가정교회가 필수적인 것을 인식하고
선교사들에게 가정교회에 관한 준비를 시킨다는 이야기를 접하면서 동감하게 되었다. 어디서드지 교회개척이 예배당 건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라면 가정교회는 그 대안이 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