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ion Transformer
"the people who know their God will display strength and take action"(Dan 11:32b)
2013년 1월 5일 토요일
[미래교회 트렌드 읽기] (16·끝) 브랜딩으로 새 옷을 입는 교회
교회의 이야기 담은 이름과 로고로 세상과 소통한다
교회가 브랜딩(branding)으로 새 옷을 입고 있다. 브랜드(brand)란 동물의 몸에 화인을 찍어 표식을 하는 데서 온 말이다. 기업에서는 생산한 제품에 이미지를 부여하는 작업을 브랜딩이라고 한다. 이를 교회에 적용해 교회의 이미지를 찾고 부각시키는 것을 ‘교회 브랜딩’(church branding)이라고 부른다. 사실 브랜딩은 기업의 마케팅 전략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교회에는 그다지 적합한 용어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교회 브랜드 설계자 리처드 라이징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교회의 브랜딩이란 세상을 향해 우리가 누구이고 무엇을 하는가를 알리는 매우 중요한 소통의 수단”이라고 말했다. 사실 많은 교회들이 분명한 정체성, 뚜렷한 목표, 명확한 메시지를 갖지 못해 어려움 속에 빠져 있는 경우가 있다. 바로 이것이 브랜딩의 부재에서 오는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미국 조지아주 그리핀의 오크힐침례교회(www.whereeverylifematters.com)는 새 성전 입당을 앞두고 교회의 브랜드를 바꾸기로 했다. 이를 위해 교회의 리더들은 우선 자신들의 교회가 가진 ‘영적 DNA’가 무엇인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들이 찾은 것은 ‘모든 사람들은 중요하다’(Every Life Matters)는 말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교회의 로고를 다시 만들었다. 사람들이 보통 오크힐이라 부르기 때문에 교회의 이름에서 침례교회라는 글자를 빼버렸다. 교회의 로고에 십자가가 있기 때문에 교회라는 말을 빼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십자가 로고 주변의 원들은 교회는 제도가 아니라 운동이라는 것을 표현했다. 그리고 그 원들이 서로 얽혀 있는 것은 서로의 삶이 연결되어 있음을 뜻했다.
이러한 브랜딩의 과정을 통해 오크힐교회는 ‘모든 사람들은 중요하다’는 모토 아래,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생명력 있는 신앙에 헌신하며, 생명력 있는 신앙이란 예배의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경험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며, 이웃의 삶에 기여하는 것을 가치로 삼고, 그리스도의 조건 없는 사랑을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며, 언제 어디서나 그리스도의 선교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로 훈련시킨다는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오클라호마주 털사에서 가장 오래된 오순절 교회인 ‘에반젤리스틱 템플’이 지난달 ‘스피릿라이프 처치’(SpiritLife Church)로 이름을 바꾸었다. 오랄 로버츠 목사가 처음 목회를 했던 이 교회는 60년 만에 새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CCC로 잘 알려진 대학생선교회는 ‘Cru’로 이름을 바꾸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2002년부터 ‘크루세이드’를 ‘선교’로 부르기 시작했다. 오늘날 십자군이라는 이름이 부정적인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이름을 바꾸는 것도 브랜딩의 한 방법이다. ‘에반젤리스틱 템플’의 경우 템플이라는 명칭 때문에 사람들이 유대교 회당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담임목사인 노만 윌키는 교회의 정체성과 사명을 가장 잘 표현할 이름을 찾게 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은사가 역사하는 교회 즉, ‘스피릿라이프 처치’였다.
호주 멜버른의 원 커뮤니티 교회는 매우 혁신적인 브랜딩을 선택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지역사회와 관계를 맺는 문화친화적 접근이라고 평했다. 보스턴의 리뎀션 시티 교회는 자신들의 교회로고에서 네 가지 신앙적 신념을 밝히고 있다. ①왕이신 한 분의 하나님이 계시다. ②모든 사람들은 죄를 가지고 태어났고,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렸다. ③예수님의 보혈은 죄를 사해주신다. ④예수님의 사랑은 제한이 없다.
교회컨설턴트 팀 피터스는 “싫건 좋건, 당신의 교회는 브랜드다. 브랜드라는 말을 사용하든 않든, 당신의 교회는 브랜드다. 만일 그래도 거북하다면 브랜드란 말 대신 평판이라고 하면 된다”고 했다. 피터스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당신의 브랜드는 사람들이 당신의 교회 이름을 들었을 때 느끼게 되는 솔직한 감정이다. 그리고 그 감정이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들이 느끼고 있는 감정이 바로 당신의 브랜드다. 그래서 마티 노이미어는 “당신의 브랜드는 당신이 당신의 교회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당신의 교회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당신의 브랜드에 대해 무어라 말할 것인가. 답은 간단하다. 관계와 경험을 통해서다. 사람들은 당신의 브랜드를 세 가지 방법으로 경험하게 된다. 첫째로 개인적 경험, 둘째로 온라인, 셋째로 당신의 브랜드를 경험한 사람을 통해 알게 된다.
교회는 어떤 브랜드를 가진 공동체인가. 교회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지역사회 안에서 문화적으로 적절한 방법으로 대위임을 성취시키게 하기 위해 특별히 브랜드해 주신 곳이다. 왜 브랜드가 필요한가. 첫째, 브랜드는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을 하며, 왜 그것이 중요한지 알려준다. 둘째, 브랜드는 신뢰의 관계를 만들어 준다. 셋째, 브랜드는 의도적이고 의미 있는 청중의 경험을 만들어낸다. 넷째, 브랜드는 한 비전을 중심으로 열정을 키워낸다. 다섯째, 브랜드는 효과적인 의사결정을 인도한다.
‘브랜딩 페이스: 문화에 영향을 끼치는 교회와 비영리기관’의 저자 필 쿡은 “본질적으로 브랜딩은 강력하고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제품, 조직, 또는 개인을 드러내는 기술”이라고 했다. 쿡이 말하듯이 교회의 브랜딩은 단순한 포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진실을 담고 있는 이야기의 외적 표현이 되어야 한다. 교회는 이 세상에서 자신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를 숙고해야 하고, 이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이 자신이 누구인가 그리고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를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교회커뮤니케이션센터의 설립자 브래드 아베어는 “교회는 가장 위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어떻게 전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다”고 했다. 브랜딩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눈에 띄는 디자인이나 귀에 쏙 들어오는 문구가 전부는 아니다. 진정한 교회 브랜딩은 진정성 있는 커뮤니케이션이 되어야 한다. 이제 교회 브랜딩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장로교, 침례교, 감리교가 브랜드였다. 그러나 새로운 세대에는 교단의 이름이 표현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전달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는 누구이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에 관한 이야기여야 한다. 바로 그 이야기가 브랜드로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교회는 어떤 브랜딩을 모색해야 하나. 워드프레스 디자이너 겸 컨설턴트인 제임스 댈먼은 다음과 같은 제언을 하고 있다. 첫째, 진실해라. 지금 현재 당시의 교회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교회의 브랜드가 주변에서 갖고 있는 이미지와 다를 때 교회는 진실성에 의심을 받게 된다. 둘째, 장점을 찾아라. 당신의 교회가 잘하고 있는 목회가 무엇인지 찾아라. 모든 일을 다 잘할 수는 없다. 장점에 집중하라. 셋째, 전문적이 되라. 세상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라. 조잡한 웹사이트나 비효과적인 미디어는 커뮤니케이션의 장애물이 된다. 넷째, 예수 그리스도에 집중하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데 자신을 가져라. 세상과 접촉하기 위해 비종교적, 비기독교적 접근이 효과적이라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곳이다.
미래교회는 글 대신 이미지, 개념 대신 이야기로 소통하는 세상 속에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 때문에 교회는 자신의 정체성과 사역을 밝히는 이미지와 이야기를 새롭게 찾아야 한다. 바로 이것이 교회 브랜딩이다. 최근 많은 교회들이 브랜딩으로 새 옷을 입고 미래로 힘찬 항해를 하고 있다. 이는 분명 교회의 미래를 밝게 해주는 긍정적 징조일 것이다.
김영래 <감신대 교수>
국민일보에 연재된 글임을 밝힙니다.
http://missionlife.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0006&sCode=0003&arcid=0006747953&code=23111613
[미래교회 트렌드 읽기] (15) 소셜미디어가 교회로 들어온다
접속만 하면 함께 예배… 時空초월 어디라도 복음전한다
소셜미디어가 목회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소셜미디어는 교회의 벽을 허물어 버렸다. 회중의 개념도 바꾸어 놓았다. 이제 예배를 드리는 회중이 모두 동일한 장소와 시간에 함께 있을 필요가 없다. 미국 플로리다주 포트로더데일의 갈보리 채플에서는 컴퓨터와 태블릿, 스마트폰을 가지고 주중 언제든지 회의를 열고, 기도를 하며, 상담을 제공한다. 이 교회에서 웹을 담당하고 있는 댄 히클링 목사는 “교인들은 사랑과 관심을 원한다. 그리고 웹목회는 문자 그대로 세상 어디까지라도 그것을 전하는 수단”이라고 했다.
주일예배에는 갈보리 채플의 7개 캠퍼스에 모인 수천 명의 성도들이 위스콘신, 네바다, 스코틀랜드 등에서 비디오스트림을 통해 접속한 수백 명의 참석자와 함께 예배를 드린다. 이들은 함께 찬양을 하고, 채팅방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만일 누군가 성경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스크린에 있는 성경아이콘을 누르라고 답을 해준다.
갈보리 채플에서는 웹 디자이너, 작가, 운영자가 페이스북, 트위터, 홈페이지 등 다양한 온라인 사이트를 관리한다. 그리고 수요일, 토요일, 주일 예배 동안 채팅방은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공간이 된다. 히클링 목사는 “바로 여기에서 관계가 형성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교회에 오지 않는 사람들 또는 교회에 좋지 않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배우게 된다. 이렇게 그들이 편안함을 느낄 때, 그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고 했다.
플로리다주 보카레이톤에 사는 수전 툴랜은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녀는 갈보리 채플의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상담을 받고 세계 각국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기도를 한다. “온라인 서비스는 나와 하나님의 관계를 새롭게 일깨워 주었다. 나는 내 방에서 나가지 못하지만 예배에 참여할 수 있고 봉사도 할 수 있다. 나는 어느 때보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있다”고 했다.
예배 도중 스크린에는 담임목사 고메스의 설교,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에 대한 댓글이 올라온다.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삭개오의 이름을 알고 계셨어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도 알고 계십니다.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는 분 가운데 기도를 원하시는 분은 온라인을 유지해 주세요.” 잠시 후 스크린에는 “저는 지난 4년 반 동안 제 아버지를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관계를 회복하고 싶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이제 교회는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보카레이톤의 만백성교회는 소셜미디어 목회에 앞서가고 있다. 교인들은 교회행사에서 찍은 사진을 자신의 블로그나 인스타그램(Instagram)에 올리고, 이 사진들은 교회의 홈페이지에 연결된다. 담임목사 마크 보이킨의 설교는 팟캐스트와 유튜브에 올려 공유된다. 그리고 ‘헝거게임’(Hunger Games)과 같은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때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 청소년들의 참여를 이끌어 낸다. 청소년 목회 사역자 살 리스보아는 “청소년을 만나려면 페이스북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페이스북이 청소년들과 부모들 사이의 간격을 좁힐 수 있는 공간이라고 확신한다.
소셜미디어는 기도의 제목을 나누고 영적 지원을 제공해주는 장소가 되고 있다. 만백성교회 보이킨 목사의 웹페이지에는 기도 요청을 받는 ‘더 하우스 오브 프레이어’(thehouseofprayer.com)라는 페이지가 마련돼 있다. 웹에 게시된 기도제목은 목회자들에게 전달되고, 온라인 또는 전화로 기도해준다.
소셜미디어 목회는 미래의 교회가 피해갈 수 없는 사역이 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위험 또한 도사리고 있다. 손안의 자그마한 기계를 통해 전 세계와 연결될 수 있지만, 동시에 전 세계로부터 고립될 수 있다. 또 한 가지 소셜미디어가 가지는 익명적 무책임성의 문제다. 폼파노비치에 있는 하버교회의 커뮤니케이션 담당자 토니 앨리시아는 소셜미디어 안에서는 사소한 이야기도 커다란 싸움을 일으키며, 서로 다른 견해가 공동체를 파괴하기도 한다고 했다.
애리조나주 펠로십 교회는 예배 도중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하도록 권장한다. 담임목사인 테드 베어드는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마가복음 16장15절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에게 문자메시지,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미디어는 포기할 수 없는 복음의 전달매체다.
예배 중 한 성도는 ‘지금 누구에게 감사하고 싶나요?’라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그러자 ‘지금 어머니에게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문자를 보냈습니다’라는 댓글이 올라왔다. 또 한 성도는 ‘오늘 테드 목사님 사진을 찍었어요. 목사님을 격려하는 말과 함께 인스타그램에 올려놓았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 글은 모두 예배 중에 나누어진 것이다. 테드 목사는 이제까지 예배를 방해하는 것으로 여긴 것들을 교회가 수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이 교회가 세상과 연결되는 방법이라고 한다.
어찌 보면 소셜미디어는 이 시대를 살면서 외면할 수 없는 매체임에 틀림없다. 마치 소셜미디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시대의 흐름에서 뒤처질 것처럼 보인다. 모두가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니 교회도 이를 활용하는 목회를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교회가 소셜미디어를 수용하려면 단순히 ‘남이 하니 나도 한다’가 아니라, ‘나는 이래서 한다’는 입장과 자세가 필요하다.
‘미니스트리 베스트 프랙티스’의 대표 빌 라이차트는 소셜미디어 사용에 있어서 교회가 가져야 할 세 가지 목적이 있다고 했다. 첫째는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다. 소셜미디어는 교회가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 물론 설교, 주보, 우편, 전화, 이메일, 면담 등 다른 매체도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과 비교했을 때 소셜미디어의 장점은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편이성, 어디서나 이용이 가능한 편재성, 여러 형식을 채용할 수 있는 다양성, 전달력이 뛰어난 전염성에서 찾을 수 있다.
둘째, ‘연결’(Connecting)이다. 교회의 소셜미디어는 교회공동체를 연결시켜야 한다. 일방적 정보의 전달이 아니라 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소셜미디어가 공동체 안에서 대화를 만들어 내는가’ ‘성도들은 목회자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가’ ‘성도들은 서로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가’이다. 여기서 이뤄지는 대화는 서로에게 도움을 주며 의미 있는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대화는 합의를 이끌어 내는 협력의 활동이 되어야 한다.
셋째, ‘행동의 요청’(Call to Action)이다. 교회의 소셜미디어는 성도들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위해 행동하도록 해야 한다. 성도의 행동은 누군가를 섬기기 위해 ‘가는 것’(Go)과, 자신이 가진 것을 ‘주는 것’(Give),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Pray),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 사역에 참여하도록 ‘동원하는 것’(Mobilize)을 포함해야 한다.
싫든 좋든 소셜미디어는 우리 삶의 일부가 되고 있고 교회의 현실이 되고 있다. 교회에 새로운 기술이나 문화는 언제나 도전이 되어왔다. 인쇄술의 발명과 전자매체의 출현을 맞이했을 때처럼 교회가 또 한 번의 지혜로운 응전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김영래 <감신대 교수>
국민일보에 연재된 글임을 밝힙니다.
http://missionlife.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0006&sCode=0003&arcid=0006729173&code=23111613
소셜미디어가 목회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소셜미디어는 교회의 벽을 허물어 버렸다. 회중의 개념도 바꾸어 놓았다. 이제 예배를 드리는 회중이 모두 동일한 장소와 시간에 함께 있을 필요가 없다. 미국 플로리다주 포트로더데일의 갈보리 채플에서는 컴퓨터와 태블릿, 스마트폰을 가지고 주중 언제든지 회의를 열고, 기도를 하며, 상담을 제공한다. 이 교회에서 웹을 담당하고 있는 댄 히클링 목사는 “교인들은 사랑과 관심을 원한다. 그리고 웹목회는 문자 그대로 세상 어디까지라도 그것을 전하는 수단”이라고 했다.
주일예배에는 갈보리 채플의 7개 캠퍼스에 모인 수천 명의 성도들이 위스콘신, 네바다, 스코틀랜드 등에서 비디오스트림을 통해 접속한 수백 명의 참석자와 함께 예배를 드린다. 이들은 함께 찬양을 하고, 채팅방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만일 누군가 성경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스크린에 있는 성경아이콘을 누르라고 답을 해준다.
갈보리 채플에서는 웹 디자이너, 작가, 운영자가 페이스북, 트위터, 홈페이지 등 다양한 온라인 사이트를 관리한다. 그리고 수요일, 토요일, 주일 예배 동안 채팅방은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공간이 된다. 히클링 목사는 “바로 여기에서 관계가 형성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교회에 오지 않는 사람들 또는 교회에 좋지 않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배우게 된다. 이렇게 그들이 편안함을 느낄 때, 그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고 했다.
플로리다주 보카레이톤에 사는 수전 툴랜은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녀는 갈보리 채플의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상담을 받고 세계 각국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기도를 한다. “온라인 서비스는 나와 하나님의 관계를 새롭게 일깨워 주었다. 나는 내 방에서 나가지 못하지만 예배에 참여할 수 있고 봉사도 할 수 있다. 나는 어느 때보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있다”고 했다.
예배 도중 스크린에는 담임목사 고메스의 설교,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에 대한 댓글이 올라온다.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삭개오의 이름을 알고 계셨어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도 알고 계십니다.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는 분 가운데 기도를 원하시는 분은 온라인을 유지해 주세요.” 잠시 후 스크린에는 “저는 지난 4년 반 동안 제 아버지를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관계를 회복하고 싶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이제 교회는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보카레이톤의 만백성교회는 소셜미디어 목회에 앞서가고 있다. 교인들은 교회행사에서 찍은 사진을 자신의 블로그나 인스타그램(Instagram)에 올리고, 이 사진들은 교회의 홈페이지에 연결된다. 담임목사 마크 보이킨의 설교는 팟캐스트와 유튜브에 올려 공유된다. 그리고 ‘헝거게임’(Hunger Games)과 같은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때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 청소년들의 참여를 이끌어 낸다. 청소년 목회 사역자 살 리스보아는 “청소년을 만나려면 페이스북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페이스북이 청소년들과 부모들 사이의 간격을 좁힐 수 있는 공간이라고 확신한다.
소셜미디어는 기도의 제목을 나누고 영적 지원을 제공해주는 장소가 되고 있다. 만백성교회 보이킨 목사의 웹페이지에는 기도 요청을 받는 ‘더 하우스 오브 프레이어’(thehouseofprayer.com)라는 페이지가 마련돼 있다. 웹에 게시된 기도제목은 목회자들에게 전달되고, 온라인 또는 전화로 기도해준다.
소셜미디어 목회는 미래의 교회가 피해갈 수 없는 사역이 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위험 또한 도사리고 있다. 손안의 자그마한 기계를 통해 전 세계와 연결될 수 있지만, 동시에 전 세계로부터 고립될 수 있다. 또 한 가지 소셜미디어가 가지는 익명적 무책임성의 문제다. 폼파노비치에 있는 하버교회의 커뮤니케이션 담당자 토니 앨리시아는 소셜미디어 안에서는 사소한 이야기도 커다란 싸움을 일으키며, 서로 다른 견해가 공동체를 파괴하기도 한다고 했다.
애리조나주 펠로십 교회는 예배 도중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하도록 권장한다. 담임목사인 테드 베어드는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마가복음 16장15절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에게 문자메시지,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미디어는 포기할 수 없는 복음의 전달매체다.
예배 중 한 성도는 ‘지금 누구에게 감사하고 싶나요?’라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그러자 ‘지금 어머니에게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문자를 보냈습니다’라는 댓글이 올라왔다. 또 한 성도는 ‘오늘 테드 목사님 사진을 찍었어요. 목사님을 격려하는 말과 함께 인스타그램에 올려놓았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 글은 모두 예배 중에 나누어진 것이다. 테드 목사는 이제까지 예배를 방해하는 것으로 여긴 것들을 교회가 수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이 교회가 세상과 연결되는 방법이라고 한다.
어찌 보면 소셜미디어는 이 시대를 살면서 외면할 수 없는 매체임에 틀림없다. 마치 소셜미디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시대의 흐름에서 뒤처질 것처럼 보인다. 모두가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니 교회도 이를 활용하는 목회를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교회가 소셜미디어를 수용하려면 단순히 ‘남이 하니 나도 한다’가 아니라, ‘나는 이래서 한다’는 입장과 자세가 필요하다.
‘미니스트리 베스트 프랙티스’의 대표 빌 라이차트는 소셜미디어 사용에 있어서 교회가 가져야 할 세 가지 목적이 있다고 했다. 첫째는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다. 소셜미디어는 교회가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 물론 설교, 주보, 우편, 전화, 이메일, 면담 등 다른 매체도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과 비교했을 때 소셜미디어의 장점은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편이성, 어디서나 이용이 가능한 편재성, 여러 형식을 채용할 수 있는 다양성, 전달력이 뛰어난 전염성에서 찾을 수 있다.
둘째, ‘연결’(Connecting)이다. 교회의 소셜미디어는 교회공동체를 연결시켜야 한다. 일방적 정보의 전달이 아니라 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소셜미디어가 공동체 안에서 대화를 만들어 내는가’ ‘성도들은 목회자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가’ ‘성도들은 서로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가’이다. 여기서 이뤄지는 대화는 서로에게 도움을 주며 의미 있는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대화는 합의를 이끌어 내는 협력의 활동이 되어야 한다.
셋째, ‘행동의 요청’(Call to Action)이다. 교회의 소셜미디어는 성도들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위해 행동하도록 해야 한다. 성도의 행동은 누군가를 섬기기 위해 ‘가는 것’(Go)과, 자신이 가진 것을 ‘주는 것’(Give),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Pray),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 사역에 참여하도록 ‘동원하는 것’(Mobilize)을 포함해야 한다.
싫든 좋든 소셜미디어는 우리 삶의 일부가 되고 있고 교회의 현실이 되고 있다. 교회에 새로운 기술이나 문화는 언제나 도전이 되어왔다. 인쇄술의 발명과 전자매체의 출현을 맞이했을 때처럼 교회가 또 한 번의 지혜로운 응전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김영래 <감신대 교수>
국민일보에 연재된 글임을 밝힙니다.
http://missionlife.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0006&sCode=0003&arcid=0006729173&code=23111613
[미래교회 트렌드 읽기] (14) 교회학교를 가정으로 보내다
자녀의 영적교육, 주일학교 대신 부모가 맡는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명기 6:7)
미국 텍사스주 포트아더에 있는 리지우드 교회는 주일학교를 없앴다. 청소년 예배도 폐지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포트 밀의 개더링 교회도 그 뒤를 따랐다. 언뜻 들어보면 마치 교회가 교회학교 교육을 포기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교회학교의 교육을 가정으로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를 보통 ‘가족통합교회’(family-integrated church)라고 부른다. 혹은 ‘가족제자화교회’(family discipleship church), 또는 ‘가족중심교회’(family centered church)라고도 한다. 이러한 교회에서 목회자들은 주일학교 교사나 청소년 목회자 대신 부모가 자녀들을 영적으로 지도하도록 한다.
2009년 출간된 ‘가족목회의 관점들: 세 가지 견해’(Perspectives on Family Ministry: Three Views)에서 폴 렌프로는 ‘가족통합목회’를 가장 바람직한 목회라고 했다. 그는 신명기 31장 12절의 ‘곧 백성의 남녀와 어린이와 네 성읍 안에 거류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에게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라는 말씀과 에베소서 6장 1∼3절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말씀에 근거해 교회의 모든 집회에는 어린이들이 어른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리지우드 교회의 더스틴 거들리 목사는 “교회학교에 문제가 있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무엇을 해야 하나. 우리는 성경의 권위에 의존해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교회학교 문을 닫고 부모들 특히 아버지들에게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책임지도록 권유했다.
‘교회 안의 잡초’(A Weed in the Church)의 저자 스콧 브라운 목사는 마치 학교에서처럼 연령별로 구성된 교회학교는 비성서적일 뿐만 아니라 바로 이러한 교육으로 인해 청소년들이 교회를 떠난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인 가족의 주일 모습을 살펴보자. 주일아침 가족이 함께 교회에 온다고 해도 예배와 교육 프로그램이 끝나 집에 돌아 올 때까지 서로 만날 기회가 없다. 또는 아예 각자 교회에 나와 자신이 속해 있는 연령별 예배에 참석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브라운 목사는 ‘주일은 가족을 연합시키는 날이 아니라 분리시키는 날’이라고 지적한다. 이는 결코 성경적 교회의 모습이 아니라고 그는 이야기한다.
또한 가지 그가 지적하는 것은 연령별 예배와 교육이 성경적 모형을 따르기보다 교육적 또는 문화적 효율성만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청소년 프로그램은 그들의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무절제한 방향으로 흐른다. 청소년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프로그램에 투자되는 교회의 재정은 결국 소비와 오락의 문화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는다.
그의 주장은 분명하다. 예수님께서 무리를 가르치실 때 그들을 연령별로 나누지 않으셨다. 이러한 주장은 담은 비디오 ‘디바이디드(Divided)’는 인터넷상에서 뜨거운 논쟁을 일으키며 배포되고 있다. ‘전국 가족통합교회’의 노스캐롤라이나 지부를 이끌고 있는 브라운 목사는 현재 800여개 교회들이 전통적 형태의 주일학교를 폐지하거나 축소하고 있다고 말한다.
아이다호주 트윈폴스의 이스트사이드 서던 침례교회의 폴 톰슨 목사는 브라운 목사의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교인들에게 연령별로 구별한 주일학교교육을 ‘회개하고 폐지하는’ 계획을 내놓았다. 브라운과 톰슨 목사는 이렇듯 청소년들이 교회에서 사라진 이유를 기존의 주일학교 교육의 구조에서 찾았다. 문제의 핵심은 바로 부모가 배제된 신앙교육에 있다고 본 것이다. 버지니아주 알링톤의 그레이스 바이블 교회의 조수 라이문도 목사는 이 운동의 원칙에 동참하면서 약간 다른 접근을 택했다. 교회 주일학교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청소년들과 부모들이 한 테이블에 앉아 성경을 공부하도록 했다. 그는 “중요한 것은 부모들이 자신들 자녀의 교육에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청소년종교연구소장 크리스천 스미스는 “브라운 목사의 연령 통합적 접근이 만병통치약은 아닐 수 있다”면서 “하지만 자녀들의 신앙교육에서 부모의 역할이 가지는 중요성을 지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가족 중심의 교회교육을 지원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단체는 ‘D6 컨퍼런스’이다. 여기서 ‘D6’는 신명기(Deuteronomy) 6장 5∼7절을 뜻하는 이름이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그들은 제자화와 가족목회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신명기 6장에 명령하시듯이, 가족이 영적 형성(제자화)의 중심이 돼야 한다. 2011년 ‘D6 콘퍼런스’에는 10개국, 40개 주, 35개 교단에서 500개 교회가 참석했다.
‘D6 패밀리’는 ‘스프링크(Splink)’ 즉, ‘당신의 가족을 영적으로 함께 연결하는 간단한 방법’(a SIMPLE way to LINK your family together spiritually)이라는 이름으로 매주 무료로 가족이 함께 연결되는 데 도움 되는 아이디어를 이메일로 보내준다. 여기에는 신앙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방법, 기도와 묵상을 시작하는 방법, 가족끼리 함께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담겨 있다.
또 다른 단체는 더글러스 W 필립스가 이끄는 ‘비전 포럼(Vision Forum)’이다. 이 단체는 비전을 심어주는 제자화를 통해 전 가족을 함께 가르치고, 훈련시켜 용기 있는 아버지, 고결한 어머니, 덕이 있는 아들과 딸로 바로 서게 하는 것을 사역의 목표로 삼고 있다. 또 이들은 가족을 믿음으로 이끌려는 아버지, 홈스쿨링을 하면서 성경적 교재가 필요한 어머니, 손자와 손녀에게 믿음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훌륭한 교육방법과 자료를 제공한다.
물론 ‘가족통합교육목회’에서 경계해야 할 점도 있다. 사우스웨스턴 침례교 신학대학교의 리처드 로스 교수는 “교회에는 연령 구분 프로그램으로 인한 불균형이 있다. 이것은 바로 잡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극단적으로 연령 구분 프로그램을 없애는 것은 목욕물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목욕물과 아기를 함께 버리는 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국청소년목회 네트워크의 대표 다릴 너스 역시 이 운동이 지나치게 엄격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모든 청소년들이 건강한 가정에서 성장하고 있는 것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통합교육목회’를 주장하는 이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가정에서 이뤄지는 신앙교육은 미래교회에 의미 있는 트렌드로 지속될 것 같다. 부모 특별히 아버지가 자녀의 신앙교육을 담당하는 것은 성경적일 뿐만 아니라 교육적 측면에서도 매우 훌륭한 일이다. 이러한 면에서 교회학교를 가정으로 보내는 것은 교회의 목회적 과제다. 비록 교회학교를 없애지 않고 그대로 운영하는 경우에도 신앙교육이 가족이라는 형식과 테두리 안에서 이뤄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가족통합교육목회’의 핵심은 교회학교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예배하고 함께 말씀을 배우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김영래 <감신대 교수>
국민일보에 연재된 글임을 밝힙니다.
http://missionlife.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0006&sCode=0003&arcid=0006707377&code=2311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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