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개신교인 9% 가정교회서… 전통적 교회와 건강한 공존 필요
2010년 10월 21일 미국의 NBC 방송은 ‘예배의 집(House of Worship)’이라는 제목의 흥미로운 보도를 내보냈다. 내용은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정교회운동’에 관한 것이었다. 보도에 의하면 미국인 중 600만에서 1200만명이 가정교회에 속해 있다고 한다. 미국 개신교인의 9%가 가정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 보도는 가정교회가 새로운 예배의 형식과 내용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가정교회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가정교회(house church 또는 home church), 중국에서의 지하교회(underground church), 혹은 가족교회(family church)는 가정과 같은 장소에서 소규모 신자들이 모이는 독립적 예배공동체를 의미한다. 가정교회의 기원은 초대교회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사도행전 1장 13절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한 집의 다락방에 모인 것이 바로 그것이다.
오늘날 이 운동은 ‘단순한 교회(simple church), 관계적 교회(relational church), 원시적 교회(primitive church), 지체의 삶(body life), 유기적 교회(organic church), 성경적 교회(biblical church)로도 불리고 있다. 서로 차이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이들 모두 교회가 ‘조직화된 공동체(an organized community)’에서 ‘유기체적 공동체(an organic community)’로 회복돼야 한다는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통계를 살펴보면 방글라데시에서는 가정교회를 통해 50만명의 새로운 신자가 생겼고, 캄보디아에서는 1990년 이후 10년 동안 1000개의 가정교회가 세워졌다. 캐나다에서는 지난 몇 년간 2000개의 가정교회가 설립되었고, 중국에서는 가정교회 신자가 8000만에서 1억명에 달하고 있다. 쿠바에서는 1992년 이래 6000에서 1만개의 가정교회가 나타났고, 이집트에는 4000개의 가정교회가 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1980년대에만 가정교회의 신자가 5000명에서 5만명으로 증가했다. 인도에서는 2001년에서 2006년 사이 10만개 가정교회가 새롭게 개척됐다. 남미에서는 2004년 7개월 동안 131개 가정교회가 세워졌다. 베트남에서는 1997년에서 99년 사이 한 교회의 교회개척팀이 550개의 새로운 가정교회를 설립했다.
이로써 1960년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카리스마틱 부흥운동과 1970년대 미국의 예수운동과 함께 다시 움트기 시작한 가정교회운동은 새로운 성장의 전기를 마련하고 있다. 초대 기독교의 교회운동이 다시 불붙은 것 같다.
그렇다면 왜 가정교회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프랭크 바이올라가 말하는 가정교회의 ‘유기체적 본성’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그에 의하면 유기체적 교회는 인간의 제도나 종교적 프로그램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삶에서 나온 것이다. 공동체는 서로 얼굴을 맞대고, 구성원은 모두 예배와 사역에 참여하며, 상하의 계급구조 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공동체의 머리이며 주님이시다. 따라서 유기체적 교회는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제도적 기구(an institutional organization)가 아니라 영적 유기체(a spiritual organism)가 되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가정교회의 특성을 살펴보자면 첫째, 교회 구성원은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사는 것을 배우고 그 삶을 드러낸다. 둘째, 교회 구성원은 자신들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좇아가며 모임과 공동체의 삶에서 그리스도를 나눈다. 셋째, 목회자와 평신도의 구별이 없고 모든 구성원은 함께 참여하고 사역한다. 각자 다른 사역과 역할이 있으며 목회자와 함께 의사결정에 기여한다. 넷째, 예수 그리스도는 실제적으로 머리가 되신다. 다섯째, 교회는 신학적 체계나 실천 방법 또는 인간적 성향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기초로 삼는다. 여섯째, 교회는 한 주에 한 번 모임을 갖지 않는다. 가능한 한 자주 모이고 친밀한 공동체를 유지한다. 일곱째, 교회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을 구하고 그것을 위해 존재한다. 교회는 전도, 제자화, 사회정의, 영적 은사, 교회 성장만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궁극적 뜻을 따르기 위해 모인다.
물론 여기에는 현실적 이유도 있다. ①서구를 시작으로 기독교의 영향이 점점 약화되면서 교회는 더 이상 사회적 삶의 중심이 되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주일 교회에 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 많은 교회들이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유형의 목회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됐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선교적 공동체 또는 유기적 교회의 개념을 찾게 됐다. ②최근 경제위기가 교회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교인 수가 줄어든 교회는 건물을 유지하기 어렵게 됐고 소규모 교회의 유기적 연합을 모색하게 됐다. ③반기독교 분위기의 영향으로 공공건물을 예배 장소로 이용하기 어렵게 됐다. ④교회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면서 하나님께서 유기적 교회의 방향으로 이끄심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가정교회에는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유기적 제자도(Organic Discipleship)’의 저자이며 제노스 펠로십(Xenos Fellowship)의 담임목사인 데니스 맥컬럼은 가정교회의 사역에서 우려되는 점들을 지적했다. 첫째, 가정교회는 종종 초대교회의 규모에 대해 오해를 갖고 있다. 즉 소규모 가정 단위의 모임만 존재하고 큰 규모 집회는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나는 가정교회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사도행전 2장 46절은 “성전에서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라며 단지 가정에서만 모인 것이 아님을 밝혀주고 있다. 또한 예루살렘 교회의 일부였던 솔로몬행각의 경우 수만명이 모일 수 있는 장소였다.
둘째, 리더를 선택할 때 종종 옳지 못한 기준을 적용한다. 디모데전서 3장 8∼13절은 집사의 자격에 대해 분명한 기준을 알려준다. 그러나 교회는 보통 개인의 사회적 능력, 직업, 재정후원 또는 연령에 따라 리더를 결정한다. 이것은 가정교회의 영적 성장에 반드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셋째, 가정교회는 종종 내부 문제에 관심을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가정교회는 전도와 선교를 위해 외부로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공동체다. 이러한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가정교회는 구성원들이 자신의 문제에 집착해 분열되거나 불만족을 드러내게 된다.
넷째, 가정교회 리더들에 대한 충분한 교육이 제공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소규모 그룹의 역동성에만 관심을 갖다 보면 리더를 준비시키는 일에 게을러질 수 있다. 가정교회의 요구와 더 큰 범위의 교회에 대한 균형 있는 시각을 갖기 위해 리더의 교육과 훈련은 반드시 필요하다.
다섯째, 가정교회는 자기증식을 통한 성장을 꺼리는 성향이 있다. 소규모 가정교회의 친밀도가 높아지면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거나 새로운 그룹으로 나뉘는 것을 원치 않게 된다. 이는 가정교회의 존재이유를 망각한 태도다. 교회는 구원받은 이들이 날마다 늘어나는 것을 존재의 목적으로 삼는 공동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유기체적 교회인 가정교회는 제도적 교회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을 지키고 전해 온 신앙공동체다. 때문에 우리가 바라는 미래는 가정교회와 전통적 교회 사이의 건강한 공존일 것이다.
김영래 <감신대 교수>
2010년 10월 21일 미국의 NBC 방송은 ‘예배의 집(House of Worship)’이라는 제목의 흥미로운 보도를 내보냈다. 내용은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정교회운동’에 관한 것이었다. 보도에 의하면 미국인 중 600만에서 1200만명이 가정교회에 속해 있다고 한다. 미국 개신교인의 9%가 가정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 보도는 가정교회가 새로운 예배의 형식과 내용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가정교회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가정교회(house church 또는 home church), 중국에서의 지하교회(underground church), 혹은 가족교회(family church)는 가정과 같은 장소에서 소규모 신자들이 모이는 독립적 예배공동체를 의미한다. 가정교회의 기원은 초대교회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사도행전 1장 13절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한 집의 다락방에 모인 것이 바로 그것이다.
오늘날 이 운동은 ‘단순한 교회(simple church), 관계적 교회(relational church), 원시적 교회(primitive church), 지체의 삶(body life), 유기적 교회(organic church), 성경적 교회(biblical church)로도 불리고 있다. 서로 차이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이들 모두 교회가 ‘조직화된 공동체(an organized community)’에서 ‘유기체적 공동체(an organic community)’로 회복돼야 한다는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통계를 살펴보면 방글라데시에서는 가정교회를 통해 50만명의 새로운 신자가 생겼고, 캄보디아에서는 1990년 이후 10년 동안 1000개의 가정교회가 세워졌다. 캐나다에서는 지난 몇 년간 2000개의 가정교회가 설립되었고, 중국에서는 가정교회 신자가 8000만에서 1억명에 달하고 있다. 쿠바에서는 1992년 이래 6000에서 1만개의 가정교회가 나타났고, 이집트에는 4000개의 가정교회가 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1980년대에만 가정교회의 신자가 5000명에서 5만명으로 증가했다. 인도에서는 2001년에서 2006년 사이 10만개 가정교회가 새롭게 개척됐다. 남미에서는 2004년 7개월 동안 131개 가정교회가 세워졌다. 베트남에서는 1997년에서 99년 사이 한 교회의 교회개척팀이 550개의 새로운 가정교회를 설립했다.
이로써 1960년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카리스마틱 부흥운동과 1970년대 미국의 예수운동과 함께 다시 움트기 시작한 가정교회운동은 새로운 성장의 전기를 마련하고 있다. 초대 기독교의 교회운동이 다시 불붙은 것 같다.
그렇다면 왜 가정교회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프랭크 바이올라가 말하는 가정교회의 ‘유기체적 본성’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그에 의하면 유기체적 교회는 인간의 제도나 종교적 프로그램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삶에서 나온 것이다. 공동체는 서로 얼굴을 맞대고, 구성원은 모두 예배와 사역에 참여하며, 상하의 계급구조 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공동체의 머리이며 주님이시다. 따라서 유기체적 교회는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제도적 기구(an institutional organization)가 아니라 영적 유기체(a spiritual organism)가 되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가정교회의 특성을 살펴보자면 첫째, 교회 구성원은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사는 것을 배우고 그 삶을 드러낸다. 둘째, 교회 구성원은 자신들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좇아가며 모임과 공동체의 삶에서 그리스도를 나눈다. 셋째, 목회자와 평신도의 구별이 없고 모든 구성원은 함께 참여하고 사역한다. 각자 다른 사역과 역할이 있으며 목회자와 함께 의사결정에 기여한다. 넷째, 예수 그리스도는 실제적으로 머리가 되신다. 다섯째, 교회는 신학적 체계나 실천 방법 또는 인간적 성향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기초로 삼는다. 여섯째, 교회는 한 주에 한 번 모임을 갖지 않는다. 가능한 한 자주 모이고 친밀한 공동체를 유지한다. 일곱째, 교회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을 구하고 그것을 위해 존재한다. 교회는 전도, 제자화, 사회정의, 영적 은사, 교회 성장만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궁극적 뜻을 따르기 위해 모인다.
물론 여기에는 현실적 이유도 있다. ①서구를 시작으로 기독교의 영향이 점점 약화되면서 교회는 더 이상 사회적 삶의 중심이 되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주일 교회에 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 많은 교회들이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유형의 목회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됐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선교적 공동체 또는 유기적 교회의 개념을 찾게 됐다. ②최근 경제위기가 교회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교인 수가 줄어든 교회는 건물을 유지하기 어렵게 됐고 소규모 교회의 유기적 연합을 모색하게 됐다. ③반기독교 분위기의 영향으로 공공건물을 예배 장소로 이용하기 어렵게 됐다. ④교회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면서 하나님께서 유기적 교회의 방향으로 이끄심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가정교회에는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유기적 제자도(Organic Discipleship)’의 저자이며 제노스 펠로십(Xenos Fellowship)의 담임목사인 데니스 맥컬럼은 가정교회의 사역에서 우려되는 점들을 지적했다. 첫째, 가정교회는 종종 초대교회의 규모에 대해 오해를 갖고 있다. 즉 소규모 가정 단위의 모임만 존재하고 큰 규모 집회는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나는 가정교회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사도행전 2장 46절은 “성전에서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라며 단지 가정에서만 모인 것이 아님을 밝혀주고 있다. 또한 예루살렘 교회의 일부였던 솔로몬행각의 경우 수만명이 모일 수 있는 장소였다.
둘째, 리더를 선택할 때 종종 옳지 못한 기준을 적용한다. 디모데전서 3장 8∼13절은 집사의 자격에 대해 분명한 기준을 알려준다. 그러나 교회는 보통 개인의 사회적 능력, 직업, 재정후원 또는 연령에 따라 리더를 결정한다. 이것은 가정교회의 영적 성장에 반드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셋째, 가정교회는 종종 내부 문제에 관심을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가정교회는 전도와 선교를 위해 외부로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공동체다. 이러한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가정교회는 구성원들이 자신의 문제에 집착해 분열되거나 불만족을 드러내게 된다.
넷째, 가정교회 리더들에 대한 충분한 교육이 제공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소규모 그룹의 역동성에만 관심을 갖다 보면 리더를 준비시키는 일에 게을러질 수 있다. 가정교회의 요구와 더 큰 범위의 교회에 대한 균형 있는 시각을 갖기 위해 리더의 교육과 훈련은 반드시 필요하다.
다섯째, 가정교회는 자기증식을 통한 성장을 꺼리는 성향이 있다. 소규모 가정교회의 친밀도가 높아지면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거나 새로운 그룹으로 나뉘는 것을 원치 않게 된다. 이는 가정교회의 존재이유를 망각한 태도다. 교회는 구원받은 이들이 날마다 늘어나는 것을 존재의 목적으로 삼는 공동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유기체적 교회인 가정교회는 제도적 교회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을 지키고 전해 온 신앙공동체다. 때문에 우리가 바라는 미래는 가정교회와 전통적 교회 사이의 건강한 공존일 것이다.
김영래 <감신대 교수>
국민일보에 연재된 글임을 밟힙니다.
http://missionlife.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0006&sCode=0003&arcid=0006511865&code=2311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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