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일 일요일

소그룹 활동의 성경적 근거

소그룹 활동은 어느 선교단체에 의해서 창안된 것이 아니다. 아주 오래 전에 사람들은 소그룹 활동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품을 구비하고 순종하는 가운데 행동하도록 하기 위한 핵심적인 활동임을 알고 있었다.

1. 구약의 경우

사 실상 소그룹은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후 곧바로 생겨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자신의 목적들을 성취 시키고자 가족이라는 그룹과 다른 형태의 소그룹들을 통해 역사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 대한 자신의 염원이 곧 의로운 삶을 사는 것(창 7:1)임을 보이시기 위해서 여덟 명으로 이루어진 노아의 가족을 사용하셨다.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과 언약을 맺으셨던 것도 바로 이 가족 그룹을 통해서였다(창 9:8~9).

그 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애굽으로부터 구출하시고 나서 하나님께서는 소그룹 단위로 구성된 새 민족을 이루기 시작하셨다. 출애굽기 18장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열 명, 오십 명, 백 명, 그리고 천명의 그룹으로 나누셨는지를 볼 수 있다. 이렇게 소그룹 단위로 분할하면 각 개인이 보다 세심한 배려를 받을 수 있게 된다. 구약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도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그들이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행동하도록 준비시키기 위해 꼭같이 소그룹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방식을 볼 수 있다(민 2장, 13장, 수 4:12, 느 3장, 단 1:3~7).

2. 예수님의 경우

신 약에서도 똑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명으로 이루어진 소그룹을 모으셨다. 이후 3년 동안 예수님께서는 이 소그룹의 제자들에게 가르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이시면서 수많은 시간을 그들과 더불어 보내셨다. 요한복음 17장에 나오는 제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기도에서 우리는 이 소그룹의 리더로서의 예수님의 역할을 보자 잘 이해할 수가 있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요 17:6~8)

예수님의 역할은 이 소그룹의 구성원들에게 하나님 아버지를 나타내 보이고 그들이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는 공동체로서 세상 속에 존재하도록 부르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7장 18절에서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세상에 보내었고”라고 기도하시기까지 하셨다. 예수님의 임무는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었다. 역시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섬기는 공동체라면 그 말과 행실로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목표를 향해 예수님께서는 소그룹 활동을 이끄셨던 것이다.

3. 초대교회의 경우

예 수님의 승천 이후 제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기도가 역사적으로 그대로 성취되는 것을 우리도 볼 수 있다. 베드로가 오순절 날 메시지를 전한 결과로 하루 만에 교회 구성원이 120명(행 1:15)에서 3,000명(행 2:41)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갓 믿는 이 모든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신앙 속에서 계속 성장해 나갔고 복음을 위한 전권대사가 될 수 있었을까?

초대교회에서 이러한 갑작스런 인구폭발이 있은 후에, 그 구성원들은 더 이상 단지 대그룹의 형태(Large Groups)로만은 계속해서 효과적으로 모일 수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하는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을 10명 단위 또는 50명 단위의 소그룹으로 나누도록 모세에게 지시하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초대교회가 보다 작은 단위로 모이도록 이끄셨다. 사도행전 2장 46절에서 우리는 베드로가 전한 메시지의 여파로서 예루살렘 교회가 상호 보완적인 두 개의 모임 곧 대그룹 모임(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과 소그룹 모임(집에서 떡을 떼며)으로 나뉘게 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전체적인 교제의 차원에서 정기적으로 모임으로서 그들의 한 몸 됨을 나타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은 또한 보다 작은 단위의 소그룹으로 모임으로서 더욱 친밀한 공동체 생활을 발전시켰다. 이 소그룹 모임은 아마도 대부분 서로 가깝게 살았으며 서로의 집에서 함께 모이던 사람들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사도행전 2장 42~47절에서 우리는 이들의 소그룹 활동 속엔 네 가지의 구성요소가 있었던 것을 찾아볼 수 있다. (1) 가르침을 받는 것(nuture), (2) 예배(worship)를 드리는 것, (3) 공동체(commuity)를 이루는 것과 (4) 전도(mission)하는 것이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 2:42~47)

   가. 교육/훈련의 요소

첫 째로 초대교회의 새신자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 일에 힘썼다.”(행 2:42) 우리에게 있어 사도의 가르침과 똑같은 것은 성경 말씀이다. 그러나 초대 교인들은 단지 하나님의 진리를 배우는(learn) 것만 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성경을 보는 일에 전혀 힘썼다(devoted). 즉 그들은 가르침의 권위에 복종했다. 이러한 결과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반응으로 나타났다(행 2:43). 두려움(awe)이란 예배와 복종으로 이끄시는 하나님께 대한 적절한 두려움, 또는 존경이다. 초대교회처럼, 오늘날 우리의 소그룹도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려는 열망과 하나님 말씀의 권위에 기꺼이 복종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 권위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바에 순종하게끔 하는 것이다. ‘교육/훈련’을 통해서 우리 모두는 주님으로부터 받는다. 이것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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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예배적 요소

초 대교회의 소그룹 활동 중 두 번째 요소는 예배이었다. 그들의 예배는 사도들이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데 대한 올바른 반응의 결과였다. 그들은 성전에서 형식을 갖춘 예배(formal worship)와 가정에서 형식이 없는 예배(informal worship)를 드렸다(행 2:46). 예배 시에 그들은 기쁨과 순정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미하는 자세를 지녔다(행 2:46~47). 성경을 이해하고 자신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일들을 알기 시작함에 따라 그들은 즉각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바라시는 모든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되면서 그들은 공동체로 모이게 되었다.

   다. 공동체적 요소

소 그룹에서 서로 마음을 합하여 드리는 예배는, 그 구성원들을 소그룹 활동 중 셋째 요소인 공동체적 유대관계 속으로 이끈다. 오늘날 너무나 자주 공동생활이라든가 교제(fellowship : Koinonia, 행 2:42)의 의미는 피상적이고도 제한된 것이다. 우리는 종종 공동체라는 것을 주관적인 소속감으로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초대교회의 소그룹에는 그 공동생활이 지극히 중요했으며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을 나타내 보였다.

첫째, 공동체는 서로 나누는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이라고 하는 객관적인 축복을 공통적으로 소유하고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끌어내야 하는 것은 단지 함께 있다는 데서 오는 따뜻한 느낌들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하나님의 은혜에 참예하였다는 것(빌 1:7)과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를 그들이 공유하고 있었다는 구체적인 사실이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fellowship : community)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고전 1:9)

우 리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영광 속에서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다(롬 6:3~4). 우리는 또한 하나님과의 공통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반역에 대해서 용서 받았을 뿐 아니라, 또한 하나님의 자녀의 위치로 승격되었고 그 결과 하나님과의 공동생활을 영위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공동의 기업을 공유(share together)하고 있다. 소그룹에서 우리 모두는 주님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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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째, 공동체의 또 다른 특징은 서로 통용(sharing with one another)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곤경에 빠져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은 거의 기꺼이 그 필요를 채워주었다(행 2:44~45). 사도행전 4장 32절에서 이 통용하는 것에 대해 보다 상세한 실례를 볼 수 있는데, 거기서는 모든 신자들이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다”고 기술이 되어 있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이 전혀 필적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에 대한 사랑을 갖고 있었다. 이 사랑의 관계가 초대교회에서 발전됨에 따라 초대교회의 소그룹은 서로 친밀하고, 상호 관심을 써주고, 서로를 보살펴 주는 그룹이 되었다. 소그룹에서 우리 모두는 서로를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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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 전도적 요소

셋 째, 초대교회 소그룹의 공동생활에서 나타난 마지막 특징은 함께 밖에다 나눠준다(sharing outward together)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소그룹 활동의 네 번째 요소인 전도이다. 그들이 함께 공유하고(share in together) 있고 서로 통용하고(share with each other) 있던 공동의 기업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주어야 했다. 이중 일부는 곤핍에 처한 사람들에게 물질을 나눠주는 일이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히 13:16)

초 대교회의 절친한 소그룹 구성원들은 안쪽으로만 파고 드는 파벌을 형성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는 대신에 그들은 궁핍한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함께 밖에다 나누어 주었다. 그들은 선행을 함으로서만이 아니라 복음을 전함으로서 그들 자신을 넘어서 외부로 그 영향력을 끼쳤다. 소그룹 활동의 이 네 번째 요소를 통해 우리는 또한 다른 사람들(소그룹 밖의)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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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도행전 2장을 보면 이 소그룹들의 구성원들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에 순종하도록 권면하는 ‘전도’는 성경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얻는 ‘교육/훈련적 요소’에 대한 순종과 자신들이 예배하는 하나님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열망에서 나온 결과이다. 그들의 전도 수행의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7)

왜 초대교회는 그러한 급속한 성장을 경험했는가? 우리는 초대교회가 모든 사람의 호의를 받았다고 기술하고 있는 47절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 외부 사람들이 들여다 보았을 때, 그들은 이 새로운 공동체가 색다른 것임을 발견했다. 그들은 이 소그룹들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서로 서로에 대한 사랑과 회원이 아닌 외부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특징 지워지는 것을 발견했다. 예수께서는 서로 서로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사람들을 자신께로 이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

그 소그룹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철저히 따랐을 때, 그리스도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이 소그룹 공동체에서 나타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결론 : 우리의 모델

우 리가 살펴 보았듯이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해 소그룹들을 사용해 오셨다. 창세기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소그룹 형태로 나누셨다. 초대교회는 우리에게 하나의 분명한 모델을 제시한다. 성경을 배우는 교육/훈련적 요소에 의해서 소그룹이 유지할 수 있는 힘이 공급되었다. 그리고 이 교육/훈련적 요소에 대해 그들이 충실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게 되었다. 또한 이 예배는 신자들의 공동체에서 행해졌는데 그들은 자기들의 이기적인 관심거리들만 추구하는 대신에 그 존재의 기초를 하나님의 은혜를 공유하는 것과 자신들 사이에 또 교회 밖의 사람들과 필요를 나누는 것에 두었다. 다름 사람들과 나누는 일의 중심 부분은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알리는 전도였다.

이 초대교회의 소그룹 형태의 공동체는 확실히 많은 문제점들을 발생시키기도 했다(고린도전서를 읽어보라). 그러나 이 소그룹 형태의 공동체는 또한 분명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독특한 점들을 갖고 있다. 엘튼 트루불러드는 ‘선동적인 교제’(The Incondiary Fellowship)라는 책에서 초대교회와 현대의 소그룹의 본질을 요약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교회란 약하기 때문에 모이고, 모인 사람들과 그리스도와의 하나됨이 자기를 담대하게 해주기 때문에 봉사하기 위해 흩어지는, 자기가 부적합함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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