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넘치는 것이 설교자료이다. 원하기만 한다면 양질의 주석자료와 설교문들을 구할 수 있다. 더욱이 어느 정도 규모를 가지고 있는 교회들은 대부분 동영상으로 설교를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게 해놓았다. 인터넷의 발달이 편리한 시대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함정이 있고 덫이 있다. 과거처럼 수고하지 않아도 유명하다고 하는 분들의 설교문들과 설교 자료들을 구할 수 있고 들을 수 있다. 한편의 설교를 만들어내기 위해 일주일에 적어도 20시간 이상을 쏟아 부어야 한다고 말한다(이론적으로). 이런 인터넷의 발달이 그런 수고를 덜어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목회자들이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이고 덫이다.
몇 시간 들이지 않아도 양질의 설교문이 그 자리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저런 자료들과 동영상들을 보면서 설교문을 너무도 쉽게 만드는 것이다. 훌륭하다고 하는 분들의 설교를 기초로 해서 만든 것이니 본문에 대한 깊은 관찰력과 논리성, 참신성은 보장이 된 것이다. 그저 감동 있게 성도들에게 전달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설교를 들을 때마다 느끼는 점이 하나 있다. 묵상이 빠진 설교는 아무리 내용이 탁월하고 전달 면에서 은혜가 넘친다고 해도 자신의 설교가 아니라는 것이다. 마치 시골 농부가 강남 로데오 거리에서 최신 유행의 옷을 맞추어 입은 것과 같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성육신 되지 못한 말씀은 아무런 능력이 없다. 말씀을 듣는 성도들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말씀을 전하고 있는 설교자 자신이 먼저 그 말씀으로 변화되지 않았는데... 그런 말씀을 은혜롭게, 카리스마가 넘치게 전한다고 듣는 성도들이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귀가 커지고 머리만 커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변화는 일어나지 않으면서 어느 목사의 설교가 좋다느니, 나쁘다느니 판단만 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먼저 설교자가 설교할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그 말씀으로 삶의 놀라운 변화와 성숙을 경험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언어, 자신의 경험으로, 더 나아가 자신의 삶으로 그 말씀을 설교해야 한다. 더욱이 교회 안에서 장기 목회를 할 경우 2년 이상이 지나면 목회자의 성품과 인격이 다 드러나기 때문에 설교의 내용보다 설교자의 성품과 삶을 통해 그 설교를 듣게 된다는 것이다.
그 러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말씀을 묵상하는 삶이다. 매일 아침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그 말씀대로 삶에 굴복하는 모습이 있다면 그 설교자와 설교는 성령님의 강한 능력과 임재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을 듣는 성도들의 삶 속에 놀라운 변화와 성령의 열매가 맺힐 것이다. 은혜로운 설교, 좋은 설교를 하기 위해서는 기술이나 방법보다 말씀 앞에 굴복하는 삶, 말씀을 묵상하는 삶이 필요하다.
듣기 좋은 설교가 넘치는 이 시대... 무엇이 정말 좋은 설교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그냥 듣기만 좋은 설교가 정말 좋은 설교인지... 설교의 진정한 목적이 단순한 전달에만 있는 것인지... 매 순간마다 간편하게 설교 한 편을 만들고 그것을 전달하는 방법에만 매달리고픈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그것이 독인 잔을 마시는 것이라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처음에는 달지만 나중에는 독이 되어 성도들뿐만 아니라 설교자 자신을 죽이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말씀을 매일 묵상하는 삶을 회복하자. 매일 말씀을 가지고 주님과 교제하는 것이 무엇인지 훈련하자. 설교를 위한 성경연구가 아니라 설교자 자신을 위한 말씀 묵상과 연구가 필요하다. 그것이 모든 설교의 기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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