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 목사(사귐의 교회)
우리는 앞에서 교회론을 다루면서 교회의 본질이 공동체임을 살펴보았다. 공동체는 교회의 본질, 코이노니아의 구현, 철저한 제자도의 실천 방식이다.
공동체라는 말을 쓸 때는 그 공동체가 어떤 공동체인지 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공동체라고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필요하다. 공동체의 원형인 예루살렘의 초대교회 공동체의 형태를 살펴보자.
1. 공동체 운동의 지향성
교 회의 본질인 공동체적 삶을 지향한다고 할 때 그 공동체는 세 가지의 속성을 지닌다. 첫째, ‘철저성’이다. 공동체라는 것은 복음의 본질을 구현하고 형제애적 교제를 실천하는 네 있어서 철저하다는 것이다. 교회사에 나타난 공동체 운동 단체들과 수도 공동체들은 모두 예수님의 모범에 근거한 생활로서 그가 행하신 바와 그가 가르치신 바를 그대로 따르겠다는 철저한 순종과 헌신의 삶을 살았다. 이러한 삶을 위해서 그들에게는 ‘격상된 헌신’이 요구 되었다. 이 철저성은 수도 공동체에서는 금욕적이고 영성적 훈련의 엄격함으로, 갱신 단체들에서는 산상수훈의 삶을 그대로 실천하는 삶으로 나타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라는 공동체는 실제적인 한 가족이다.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는 혈연적인 관계를 깨뜨리지 않으면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이를 초월하여 새로운 가족을 형성한다.(엡 2:13~15)
교제의 철저성은 ‘확대가족’, ‘유무 상통’으로 나타난다. 내면적인 차원의 영적·정신적인 교제는 외면적으로는 물질을 100퍼센트까지 나누는 유무상통의 차원까지 내려간다는 것은 공동체적 교제의 ‘철저화(radicalism)’를 가리키는 것이다(요일 3:16~17). 이 유무 상통은 곧 ‘가족정신’의 철저한 시행이다. 공동체를 지향하는 대부분의 단체들은 재산을 20퍼센트에서 100퍼센트까지 공유한다. 공동체의 나눔은 종국적으로 완전한 나눔을 의미한다.
둘째, ‘가시성’이다. 공동체라는 것은 막연히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관념적인 덕이 아니라 전 생활을 통하여 영적·정신적·물질적 교제가 구체적으로 구현되는 실제적인 공동체적 삶이다. 그러므로 공동체성의 실천은 개념적인 차원에 그치지 않고 실제적이고 가시적으로 실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형제애적 교제의 가시성은 물질의 나눔과 함께 가까운 공간에서 공동생활로 함께 사는 삶, 형제 사랑의 실천 등을 포함하여 그리스도인의 모든 생활에 미치는 것이다. 공동체의 가시성이란 것은 복음이 실제로 보여질 수 있도록 구현되는 복음의 ‘가시적인 실재(visible reality)’를 가리킨다(요일 1:1). Max Delespesse는 그의 책 『교회 공동체(The Church Community)』에서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영적인 것만 실제인 양 생각하는 ‘영적인 공동체’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교회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공동체”라고 말한다.
셋째, ‘갱신 지향성’이다. 교회사에 나타난 대부분의 공동체들은 교회가 세속화될 때마다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고자 했던 교회 갱신 단체들이었다. 교회의 본질이 공동체이기에 교회의 개혁과 갱신은 자연히 공동체성 회복을 지향하고, 또한 그러한 갱신을 지향하는 운동자체는 당연히 공동체를 형성하여 사역하였다. 다음에 살펴볼 공동체 운동의 역사를 통해서 이들은 대개 갱신운동을 지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회에서 올바른 복음을 추구하고자 했던 영성운동의 영성사(靈性史)는 곧 공동체사(共同體史)였다. 영성은 하나님과 사람의 올바른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공동체적 영성이 그 바탕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 공동체의 형태와 범위
온 전한 코이노니아의 실천과 하나 됨의 효과적인 실현을 위하여 공동체는 지리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보다 가까이 혹은 한 공간에 모여 살려고 하는 공동 생활이라는 형태를 가지게 된다. 공동체라는 것은 우선 외형적으로 가까운 공간에서 함께 사는 ‘공동 생활(communal life)’, 서너 가족 이상이 한 가족으로 사는 ‘확대 가족(extended family household)’, 가족 정신에 따르는 ‘재산 공유(all things in common)’, 많은 소유와 번잡한 생활로 어려움을 당하지 않고 물질의 나눔과 형제애적 관계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생활 속에서 실제로 누리는 ‘단순한 생활(simple life)’ 등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기독교의 공동체는 수도 공동체, 생활 공동체, 공동체 교회의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수도 공동체는 모두 집단 공동 생활의 형태를 띠고 있다. 생활 공동체는 평범한 가정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인데, 한 곳에 모여 살아가는 집단 생활 공동체 형태와 도시 내에서 각 가정 별로 따로 살지만 보다 긴밀한 유대와 헌신을 통해 공동체를 형성해 살아가는 도시 공동체 형태가 있다.
‘공동체 교회’란 용어가 최근 사용되고 있는데 이것은 교회가 본질상 이미 공동체이지만 관념상의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아니라 온전한 코이노니아의 구현과 교회 내에 구체적인 공동 생활 그룹이나 지역 사회의 고통 당하는 이웃과 더불어 함께하는 공동체적 사역을 통하여 철저한 제자도가 실천되고 공동체성이 분명히 구현되는 교회를 말한다. ‘공동체 교회(community church)’라는 용어는 기성 교회가 공동체성을 너무 상실한 나머지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생긴 최근의 용어이다. 그러나 지역 교회 중에서는 교회 내에 부분적인 공동 생활 그룹이나 공동체성을 실천하기 위한 어떤 특별한 사역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진정한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구현하고 있는 경우들도 많다.
수도 공동체나 생활 공동체의 경우는 공동체란 것이 가시적으로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역 교회의 경우 일반 교회와 공동체 교회 간의 구별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본서가 지칭하는 ‘공동체’ 의 범주 안에 넣을 수 있는가 하는 모호한 점이 있다. 그 구분점은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지역 교회 내에서도 공동체성 실천의 철저성, 가시성, 갱신 지향성과 함께 ‘격상된 헌신’이 분명히 구현될 때에 공동체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17세기의 경건주의 운동에 나타난 ‘교회 속의 작은 교회(ecclesiolae)’ 추구가 바로 지역 교회 속에서 공동체를 추구하는 형태와 같은 경우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교회사 속에서 기독교의 본질을 추구한 공동체 운동은 종교개혁 이전까지는 주로 제도권 교회 밖에서 일어났으며, 경건주의 운동 이후부터는 주로 제도권 교회 내에서 일어났었다.
공동체의 모델은 초대 교회의 예루살렘 공동체이다. 예루살렘 공동체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포함된 120문도와 그들의 전도로 회개한 만여 명의 공동체 회원들이 있었다. 그들은 재산을 유무 상통하는 재산 공동체(community of goods)를 실시하였다(행 2:44-45, 4:32-35). 그들은 한 집에 모여 사는 형태가 아니라 각자 자신들의 집에 살면서 성령의 역사로 자연스럽게 물질과 영육 간의 교제를 나눈 형식이었다. 즉 예루살렘 도시 전체에 걸쳐 형성된 도시 공동체 형태였다. 이러한 초대 교회의 예루살렘 공동체의 삶은 이후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모델이 되었다.
그러므로 공동체란 교회의 본질이며 산상수훈의 철저한 제자도를 구현하는 삶의 실천 방식이다. 철저한 제자도는 성령 강림 후 이루어진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또한 공동체는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물질까지 나누어 함께 사는 실제적이고 가시적인 삶의 형태이다. 다음에 전개되는 교회사에 나타났던 공동체 운동들은 본질적인 교회를 회복하려고 의도했으며 본질적인 기독교를 철저히 실천하기 위한 방식으로서 물질까지 함께 나누는 공동체 생활 형태를 추구하였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