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대천덕(예수원 원장)
한국교회에 팽배해있는 개인주의의 문제는 사실상 거의가 개신교와 성공회의 문제이다. 가톨릭의 경우는 이것이 그다지 문제가 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우리는 "우상숭배(탐심)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이기적 야망)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 같은 것들이 육체의 일(즉 개인주의)일 뿐만 아니라 그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명백하게 말씀하신 갈라디아서 5장의 가르침을 그 동안 철저하게 무시해왔다. 이는 수많은 현대의 한국 크리스찬들, 특히 교회의 '지도자'라 불리 우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 된다.
이것은 참으로 충격적인 생각이 아닐 수 없지만 그것이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인 것이다. 더우기 시기나 분리함이나 당 짓는 것과 같은 분파주의에 빠져있지 않은 성도들조차도 성경이 '코이노니아'라고 부르고 있는 공동체에 대해서 철저히 개념과 이해가 결핍된 상태에 놓여있는 실정이다.
한국교회에서의 공동체개념 희석의 원인
이 런 문제의 뿌리들은 무엇인가? 이 문제의 원인, 또 이 문제가 오랜 역사를 두고 존재해 왔으면서도 이면(裏面)에 가려져 왔던 원인을 나는 크게 세 가지로 보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이 문제는 한국 기독교(아니면 적어도 한국 개신교)의 기원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 오역된 어휘들
이 문제에 대한 첫 번째 원인은 최초로 성경을 한글로 번역한 번역자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의 오역 가운데는 두 개의 아주 중요한 단어가 있는데 이것은 그 후의 다른 번역판들에도 그대로 이어져 내려왔다. 하나는 '교회'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의 오역과 근원지는 중국이었다. 최초의 기독교 선교사들이 중국에 도착한 것은 6세기였는데 그들은 에클레시아(ecclesia)라는 말을 번역할 때 '敎會'라는 글자를 사용했다. 그들은 '交會'라고 번역했어야 옳았다. 이 말이 성령의 교제로서의 교회에 대한 성경적 관점을 정확히 반영해주는 말인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교회는 이 최초의 선교사들 시절로부터 이미 교제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들이 선택한 '敎'라는 글자에는 유학자들의 우월 의식과 어우러진 제국주의적 사고방식이 담겨져 있으며, 이런 사고방식은 이미 서방의 교회에 깊이 잠식해 들어와 있었다.
번 역이 문제가 되는 또 하나의 단어는 교회와 매우 관계가 깊은 '코이노니아(koinonia)'라는 단어이다. 이 말은 호산나나 할렐루야나 셀라 같은 말처럼 번역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쓰는 편이 옳았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이 말이 일반 세상에는 해당되지 않고 오직 기독교에만 쓰이는 하나의 전문적인 용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그 러나 불행히도 한글 성경은 코이노니아와 그의 동원어(同源語)들을 17개의 다른 말들로 번역함으로써 크리스찬만의 어휘에서 이 말을 사실상 빼내버리게 되었고, 말과 더불어 개념마저도 흐지부지 상실해버리고 말았다. 사도신경에 겨우 이 말이 나타나지만 거의 무시되고 있고, 종전엔 성직자들이 축도 할 때 쓰이던 것이 그나마 요즘엔 무슨 협의라도 있었다는 듯이 일제히 내던져지고 그 자리엔 고도로 개인주의적인 단어인 '감화'나 '감정 ' 따위의 말들이 들어서고 말았다. 사실 이런 말들은 헬라어엔 상응단어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신약의 정신과도 어긋나는 것이다(#1 ‘성령의 코이노니아’라는 표현대신 ‘성령의 감화, 감동, 위로’라는 표현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 렇듯 현대의 목회자들은 초기의 번역자들이 시작한 실책을 잘도 이어받고 있으며 결국 공동체의 개념을 깨끗이 추방해버리고 말았다. 매주일 그들은 "우리는 공동체를 믿지 않습니다. 우리의 교회생활의 목표는 공동체가 아니라 개인의 만족감입니다 "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잘못은 한국 목회자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공회의 선교사들도 똑같은 잘못을 범했다. 성공회의 모든 아침 예배나 저녁 기도회는 고린도후서 13장 13절의 말씀으로 끝나도록 기도서(the Book of Common Prayer)에 규정돼있다. 그런데 성공회 선교사들도 ‘코이노니아’를 '감화'라는 말로의 오역을 용인했고 그것은 이후의 모든 번역판에서 그대로 답습되었다.
성공회에 있어서 이것은 놀라운 현상이었다. 사실 한국에 건너온 초기의 성공회 선교사들은 로마를 추종하던 아주 특이한 계열의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로마를 따르느라 성공회의 공동체 개념을 거부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성공회는 다른 전통을 따르던 첫 선교사들 때부터 이미 정체감의 위기를 경험해야 했고, 후에 한국의 첫 성공회 성도들이 외국에 갈 기회가 생겼을 때 그들은 성공회가 세계의 다른 곳에서는 어떠한가를 직접 보게 되었다.
2) 초창기의 선교사들
이러한 성경 어휘의 개인주의적 오역들과 더불어, 한국에 건너온 초기의 선교사들이 또한 모두 급진적인 개인주의 - 종교개혁에서 비롯되어 19세기에는 온 서방을 휩쓸어 버린 - 의 산물이었다. 여기에는 서구의 경건주의 - 올바른 교회관과 균형만 이룬다면 아주 바람직한 운동이 될, 그러나 그것 자체로만 남아있으면 위험한 개인주의로 치닫고만 - 도 한몫 거들었다.
초 기의 내한 개신교 선교사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것들 가운데 하나는 무디(D. L. Moody)의 사역이었다. 무디는 당시 본궤도를 심각하게 벗어나 형식주의, 교파주의, 세속주의의 수렁에 빠져있던 서방의 교회에 부흥을 가져오는 능력 있는 일군으로서 하나님께 사용된 사람이었다. 명목상으로만 크리스찬이었던 많은 사람들이며 결코 자신이 크리스찬이라는 것을 나타내려 하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이 무디에 의해서 그리스도께로 나아오게 되었다.
내한 선교사들은 무디와 같이 이렇게 개인구원(개인의 죄로부터의 구원을 생각할 때 그들은 그들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서 죄란 곧 술, 담배, 성(性) 등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을 강조하는 것이 한국에서도 올바른 일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불교나 유교나 민간신앙(그들이 무디의 메시지를 듣고 구원을 받던 문화에는 이에 상용하는 아무런 요소도 없었다)에 젖어있던 한국인들이 이제 그들의 말을 똑같은 맥락에서 들을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식으로도 들을 수 있는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조금도 점검을 해 보지 않았다.
무디의 보수주의는 미국에서는 다소 균형이 잡혀있었거나 아니면 최소한 마침 그 당시 막 피어 오르던 자유주의 신학운동에 의해 도전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달랐다. 선교사들은 모든 자유주의적인 것들은 일본으로나 보내라고 선교본부를 애써 설득했다. 이는 한국교회의 균형을 빼앗아갔을 뿐만 아니라 당시 막 좋은 출발을 하고 있던 일본의 경건한 복음주의 운동에마저 쐐기를 박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요컨대 초기의 선교사들은 아브라함의 믿음은 가졌지만 모세의 믿음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몰랐다고 말할 수 있다. 모세는 그의 믿음을 온 국가에 적용을 시켰던 것이다. 또한 그들은 에스라의 믿음(성경에의 깊은 헌신)은 가졌지만 에스라의 주변정황(강한 공동운명체 의식)에는 눈이 어두웠다. 개인주의적이고 현실 도피적인 종교를 향한 이 모든 치우침들은 선교사들이 한국교회에 가르쳐 준 찬송가들을 살펴볼 때 한술 더 뜬다는 느낌을 준다.
오늘날 한국 크리스찬들의 태도를 결정짓는 우선적인 요인은 성경이나 설교라기보다는 찬송가가 되고 있다. 찬송가란 공동체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아는 게 없는 책이다. 공동체 개념이 표현된 몇 개의 찬송가가 있긴 하지만 그나마 잘 불려지지 않고 있다. 반면 개인주의적이고 현실 도피적인 찬송가들은 마르고 닳도록 불려지고 또 불려지는 것이다.
이런 문제가 아주 초창기부터 한국교회에 잠재적으로 존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약 50여 년이 지나도록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채 이면에 가려져 있었다. 그 50여 년 동안에는 여러 역사적인 요인들이 교회에 상당량의 연대감과 공동체의식을 주는 역할을 해주었다. 그러다가 문제가 표면에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대략 지난 35년 전부터였다.
그러면 이 문제를 이면에 가려두었던 요인들은 무엇인가? 초기의 크리스찬들은 가족들로부터 핍박을 받았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로 뭉쳐 이 핍박 받는 새 크리스찬들을 위해 새로운 가정이 되어주어야 할 책임을 느꼈다. 더우기 얼마 후에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가 시작됐는데 이 때 교회는 전부 다 연합하여 그에 항거했으며 차츰 온 가족들과 심지어 온 마을 사람들이 크리스찬이 되어갔다. 제국주의에 대한 항거는 교회에 놀라운 연합과 공동체의식을 심어주었다.
이 런 현상은 1935~1945년의 핍박이 극도에 이르던 시기에 오히려 그 심도를 더해갔다. 다만 영국 선교사들이 관여하던 교회들만은 예외여서 그들은 신사참배 건에서 타협이 가능하다고 믿었으며 이로써 철저한 보수신학에 맹렬한 반일감정까지 지닌 미국 선교사들 관여하의 교회들로부터 자연히 분리되기 시작했다(결국 미국이라는 제국과 일본이라는 제국이 태평양의 가장자리에 대한 통제권을 놓고 격돌 상태에 놓였던 셈이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불화(disunity)의 첫 번째 조짐이었다. 이 조짐은 해방 후 곧바로 표면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즉 일제와 타협했던 교회들은 그들의 재산이 고스란히 손에 남아있게 되었는데 그들은 참배 거절로 재산을 몰수당한 교회나 일반 가난한 교회들에게 그들의 재산을 나누어주기를 거부하였던 것이다. 분열은 이렇게 마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다 6.25가 터지자 상황은 다시 한번 반전되었다. 모든 크리스찬들이 파(派)를 불문하고 무조건 공산당의 표적이 돼있음을 알게 되자 그들의 불화는 다시 막 뒤로 가려지고 만 것이다. 부산에서 피난생활을 하는 그들에게 교파의 차이나 이권다툼은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되었다.
그러다 휴전이 되고 민족중흥의 역사가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면서 더 이상 경제적 불황이나 종교적 핍박의 압력들이 없게 되자 드디어 잠자고 있던 한국교회의 개인주의가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우리는 만연하는 개인주의, 권력과 이권과 자리를 노리는 치열한 경쟁, 그리고 그 밖의 모든 육체의 일들로 점철되는 삭막한 분열의 장면들, 이미 익숙해져 있는 분열 중에서도 으뜸의 분열인 그러한 장면들을 만나게 된다.
3) '성공한' 교회
한 국교회의 공동체개념을 희박하게 만든 세 번째 원인을 생각해보자(우리는 지금까지 초기의 성경번역자들과 초창기 선교사들에 대해 얘기했다). 그것은 성공이다. 핍박과 고난과 역경이 해내지 못하던 일을 성공이 해낸 것이다. 이것은 사단의 해묵은 장난이다. 사단은 그의 적의 모든 관심이 한가지 일에만 집중될 때까지 조금씩 조금씩 슬슬 밀어준다. 그러다 갑자기 아무 예고도 없이 탁 잡아 당겨버린다. 상대는 공중으로 붕 날아올라갔다가는 이내 땅바닥에 코를 박으며 곤두박질하고 만다. 태권도나 유도나 레슬링 선수들이 이런 수법을 배운다면 아마 금메달을 따내기도 어렵지 않으리라.
우리는 쓰러졌다. 성공과 더불어 우리에게는 ‘3P’ 즉 권력(power), 명예(p.estige), 그리고 지위(position)가 찾아왔다. 성공과 더불어 우리에게는 해외유학 붐이 찾아왔다. 한 때 가난에 쪼들리던 신학교가 이제는 해외에서 수여 받은 학위 가운들로 들어차기 시작했다. 성공과 더불어 우리에게는 실제적인 신학은 뒷전에 밀쳐두고 순전히 이론적인 학문에만 탐닉해 들어가는 여유로움(?)이 찾아왔다.
여 기에 의미 파악 없는 암기식/주입식 교육방법(유교의 형식주의에서 비롯된 한국의 전통적 교육방법)이 한몫 거들었고 마침내 신학교의 강단은 목자를 길러내는 곳이 아니라 학위를 다투는 아주 무의미하고 이론만 난무하고 그저 학적(學的)일 뿐인 곳으로 탈바꿈하고 말았다.
협력의 자리엔 경쟁이 들어섰고, 이제 코이노니아는 종전에 이론에서 무시되어져 왔던 것 못지 않게 지금은 실제에서도 무시되는 것이 되고 만 것이다.
한국교회의 공동체개념 회복의 방향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공동체를 잃어버린 원인을 세 가지로 생각해보았는데 얘기가 좀 길어진 것 같다. 그러면 어떻게 잃어버린 공동체를 되찾을 것인가? 여기 그 길을 제시하려고 하거니와 그것은 이미 시작이 되고 있다.
1) 평신도운동
첫 번째 단계는 목회자들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교회에 강하게 번져나가고 있는 평신도운동이다. 목회자들이 이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날 그들은 이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이며 결코 그것을 와해시키려 들거나 지배하려 들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 운동은 초교파적이고 실제적이며 성경적이다. 이것이야말로 행동하는 교회의 모습이다. 목회자들은 교회가 목회자들과 몇몇 직분 관료들의 모임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할 것이다. 교회는 그 지체들의 것이며 그 지체의 99%는 평신도라는 사실을 그들은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이제 이들 평신도들이 그들의 직장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이며 그 나라가 안고 있는 문제들 등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을 찾아내고자 노력함에 있어서 그들은 '피차 권면 하고' 있으며 모든 종류의 이른바 '파라처치 (para-church, 기독교 사회단체 혹은 선교단체)'와 단체들과 협회들을 설립해오고 있다.
사실 '파라처치'라는 말은 교회와 그 관료제는 하나이며 똑같은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단어이다. 관료제의 지배를 벗어나는 것은 '파라처치'라는 것이다. 이보다 더 진리로부터 멀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만일 그런 것이 ‘파라처치’이라면 목회자와 관료조직은 단지 한 기관을 교회로 존속시켜주는 역할밖에는 하지 못하는 것이란 말인가? 참 교회란 이 세상을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가며 그 삶을 바탕으로 한 일대일 전도를 통하여 세상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몸을 뜻하는 것이다.
2) 신학교의 공동체 회복
신 학교가 코이노니아를 이해하고 믿는 사람들을 배출해내지 않는 한에는 건강한 교회란 그저 소망사항에 머무를 뿐이다. 더우기 공동체를 향한 평신도운동이 퍼져나가기가 무섭게 목회자들은 그것을 방해하며 나서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신학교는 무슨 일을 할 수있을까?
첫 째로, 그들은 지금 당장부터 교회(ecclesia)의 정확한 의미를 가르치기 시작해야 한다. 에클레시아에 대한 모든 관주들을 찾아 비교해보는 성경연구 프로젝트 같은 것을 만들어 학생들을 참여케 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그들은 왕국(basileia)에 대해서도 똑같은 일을 해야만 한다.
셋 째로, 그들은 학생들로 하여금 중요한 헬라어 단어 하나 하나마다 그것이 나오는 모든 구절들을 찾아본 뒤 그 용어가 각각의 구절에서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에 따라 그 구절들을 분류해낼 줄 아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물론 성구사전(concordance) 사용법 숙지는 말할 것도 없다. 두말할 것도 없이 코이노니아라는 단어에 대해서 그런 연구를 해야만 하며 그밖에 코이노니아와 유사한 의미의 단어들(예컨대 고후6:14~16상)에 대한 연구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넷째로, 신학교는 성경연구 뿐 아니라 동양의(한국의 것만이 아니라) 문화에 대한 연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이며 절실한 요구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한국신학은 서양신학자들을 맹종하는 지금의 모습을 정말이지 벗어나야 한다. 또한 성경을 연구할 때에도 지금까지의 전통을 정당화하거나 그 전통에 안주하는 일을 그만두고 성경이 정말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묻기 시작해야 한다.
다섯째로 신학교는 성령에 대해 올바로 가르쳐야 한다. 초기의 우리 성경번역자들은 성령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기에 성경 도처의 성령에 관한 구절들을 오역하고 있다. 이제 신학교가 성령의 본래 의미를 가려내 주어야 한다. 그들은 성령에 대하여 성경이 표방하는 가장 중요하고 가장 기본적인 교리는 바로 성령의 코이노니아 사역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코이노니아는 성령의 열매, 은사, 지혜, 성화, 그 밖의 어느 것보다도 우선되는 성령의 사역이다. 고후 13장 13절이 이 사실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이 구절은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여섯 가지 단어를 보여주는데 그것은 성부, 성자, 성령 그리고 그 세 위의 각각의 중요한 속성인 사랑, 은혜, 코이노니아인 것이다.
우리의 신학자들은 은혜와 사랑에 대해서는 변질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세 번째 관심사로서는 믿음이니 소망이니 성화니 은사니 능력이니 하면서 코이노니아만을 쏙 뺀 그 모든 것들에 마음을 다 집중해왔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성공하는 교회와 매우 깊은 관계가 있다고 하겠다. 교회가 가난할 때는 그게 뭔지 모르면서도 코이노니아를 실행했다. 교회가 핍박을 받을 때 크리스찬들은 배운 적이 없었어도 어려움을 나누었다. 그러나 교회가 성공하기 시작하자 코이노니아는 좀 당혹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교회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관심이 줄어지고 성령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정신 없이 분열되고 혼돈되게 되었던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성령론의 진수는 코이노니아이다. 그런데 이 코이노니아는 값 지불을 요한다. 그것도 아주 비싸고 또한 심리적 위협을 가해오는 값을. 그러나 이 코이노니아를 바로잡기 전에는 신학교는 교회의 부흥에 아무런 기여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성령의 열매, 은사, 지혜 등에 대해서는 올바른 코이노니아를 가르치고 난 후에도 얼마든지 가르칠 시간이 있는 것이다.
여섯째는 실험 작업이다. 코이노니아는 결코 진공관 속에서 가르칠 수 없다. 그것은 삶인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실험 상황 속에서 즉 실험과 병행하여 연구해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 두가 지의 방법이 가능할 것이다. 담당교수와 학생들이 소그룹을 이루어 코이노니아를 실험할 한 단위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두는 이 목적으로 따로 할당된 기숙사에 들어간다. 우리 딸이 다니던 미국의 대학은 이런 것이 잘 돼있었는데 그것이 그 아이에게는 아주 값진 경험이 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상적 인 방법은 신학교마다 학교 전체가 실험장이 되고 학교 전체가 살아있는 코이노이나가 되는 것이다.
한 국에 이런 것들이 가능한 신학교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는 내가 한 학교를 알고 있고 그 밖에도 적지 않게 있으리라고 추측된다 (학위를 주는 신학교는 아니지만 성경연구소나 선교사 훈련센터 등에는 그런 데가 많이 있다). 내가 신학교의 학장으로 있던 그 7년이라는 세월 동안 나는 그것을 시도하려고 무던히도 노력했었다. 그러나 학생들과 일부 교수들과 많은 목회자들이 기를 쓰고 반대를 하는 바람에 뜻을 이를 수 없었다. 그것이 불가능함을 알았을 때 나는 그 학교를 그만두었다. 왜냐하면 그 방법 외에는 신학을 가르칠 방법이 달리 있으리라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교를 그만둔 후에 나는 나를 반대하던 사람들이 나를 그 자리에서 밀어내려고 온갖 노력을 다 동원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곱째로 신학교가 자체적으로 개선해야 할 것은 명예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난 7월 13일자 ‘코리아 타임즈’지에는 콜럼반(Columban) 신부회 소속의 맥매한(Hugh MacMahon) 신부의 팔이 실렸었다. 그는 이 세상이 온통 감투와 명예에 눈이 멀어 있다고 지적하며 이것은 기독교 정신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예수님은 세상의 영광을 취하는 자들은 참 믿음을 가질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요 5:44).
장 로회 신학대학 내 제3세계 교회지도자센터의 오콜라(Chalton S. Ochola) 목사도 같은 신문 7월 11일자에서 비슷한 언급을 하고 있다. 그는 '서구의 기독교'와 '제3세계의 기독교' 사이의 잘못된 분열현상을 지적하면서 그런 현상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임에도 버젓이 실재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는 계속하여 날카로운 도전들을 던져주는데, 잠시 그의 말을 인용해본다. "누군가가 신학자에게 질문하기를 '당신은 불이라고는 조그만 등잔불 밖에 없는 허름한 오두막집에서 신학공부를 한달 동안만 하실 수 있겠습니까?'라고 한다면 그는 무슨 반응을 보였을까? 그 곳은 굶주림과 질병과 가난으로 인하여 뼈만 남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달할 것인가 등과 같은 우리 주위의 현실문제들에 대한 학위논문을 쓰는 데는 아주 적격의 장소가 아니겠는가? 벤츠나 대우 로얄에 기사가 딸려 있고 다년간 권력과 특권을 누려오던 국회의원이 어느 날 갑자기 군사 쿠데타에 의해 감옥신세를 지게 되고 먹는 거라곤 하루 두끼 냄새 나는 접시 위의 빈약한 곡물에 잠은 변기에 엎드려서 자고 눈을 뜨면 끔찍한 고문의 연속에 시달리며 인권을 철저히 유린당하게 되었을 때에 이런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과연 따뜻한 방, 배부른 상태에서 가능할 수 있겠는가?"
신학자들이 난민이 천만을 넘어서고 매 사흘마다(올해에는 아마 매 이틀마다 인지도 모르리라) 원자폭탄 하나에 죽을 수 있을 만큼의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 이 세상의 무서운 현실들과 씨름을 해나간다면 우리는 코이노니아가 진정 무엇이며 또 성경이 사회적, 경제적 현실들에 대해서 무어라고 가르쳐주고 있는지를 훨씬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신학교가 참으로 진지하게 이러한 문제들에 우선권을 두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권력, 명예, 지위의 3P가 아닌 것을 관심사로 삼는 새로운 세대의 성직자를 배출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여덟째로 신학교가 서둘러 갖추어야 할 또 하나의 모습은 교파를 초월한 신학교들간의 의미 있는 코이노니아이다. 이것은 일일 수련회를 몇 번 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적어도 일주일은 함께 모여 보낼 필요가 있다. 신학생들은 함께 모여 단순히 서로를 알아가며, 중고등부나 대학부 학생들의 여름수련회에 이런 공동체를 적용할 수 있게끔 훈련을 받기도 할 것이다. 이런 초교파적 신학생 여름캠프를 해마다 연속적으로 개최하는 것이다. 여기서 훈련 받은 신학생들은 함께 초교파적 팀을 이뤄 마을전도 등을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3) 교회 지도자들의 역할
끝 으로 우리는 목회자의 역할에 대한 성경적 이해를 점검해보아야 한다. 오늘날의 신학교는 성경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이른바 '목회'를 위한 사람들을 길러내고 있다. 사회학적으로 볼 때 이 세상의 대부분의 원시적인 공동체들에는 장로(연장자), 행정가, 교사라는 세 부류의 지도자가 있게 마련이다.
장로는 제사를 수행하고 전통을 보존한다. 행정가는 시장(市長)이나 더 작은 행정구역단위의 장(長)을 맡아 봉사하며 일반적으로 보수를 받지 않는다. 교사들만이 보수를 받으며 또한 교사들만이 외부로부터 영입되어 들어온다. 교사들은 그 마을의 종교의식이나 그 마을의 행정에 대해선 아무런 간여도 하지 않는다.
여 기서 우리는 장로와 집사와 교사에 대한 아주 자연스런 구분을 시사 받게 된다. 교회의 장로들은 성찬식을 집도하며 세례를 베푼다. 집사들은 교회를 운영하며 재정을 관할한다. 신학교를 나온 사람들은 남자 건 여자 건 보수를 받는 교사가 되어야 하며 그들은 교회의 성례부분이나 행정부분에 대해서는 완전히 손을 떼어야 한다. 이러한 사역의 구분은 사회학적으로만 온당한 것이 아니라 또한 성경적인 것이며 교회의 부패를 최소한으로 줄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에베소서 4장에서 우리는 흔히 사도적 혹은 선교적 모델로 불리우는 또 하나의 모델을 볼 수 있다. 사도들은 모든 은사와 모든 카리스마적인 능력과 모든 신학적 훈련과 모든 교회설립의 권위(재정에 관한 것이 아니라 목회에 관한)를 부여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교회들을 세운 후 바로 앞서 말한 직분들에 따라 조직을 편성하였다. 그들은 또한 예언자들 - 예리한 영적 통찰력과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하는(즉 대언자로서의) 카리스마적인 은사를 받은 지역교회의 평신도들 - 을 세우는 일에 힘썼다. 그들은 아직 성경번역이 안된 지역에서는 성경번역을 장려했고, 문맹률이 높은 곳에서는 문맹퇴치를 겸한 전도를 하도록 지도했다. 이 성경번역자들과 문맹퇴치 전도자들이 바로 에베소서 4장 11절에 나오는 '복음 전하는 자들'이다.
이 구절에 나오는 목사라는 말은 사도행전 20장 17,28절에 나오는 장로나 감독과 같은 말이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이들은 나이가 들고 경험이 있고 연단을 받은 지혜로운 지역교회의 사람이어야 하며 집사들의 보필을 받도록 되어있다(목사는 사도행전에는 '장로'로 표현돼 있고 '집사'로 표현된 적은 한번도 없다. 그러나 '집사'는 크게 보면 모든 종류의 '교회 일꾼'을 뜻한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후서와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서 자신을 집사라고 표현했고, 디모데도 감독을 안수할 권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사라고 불리 운 적이 있다).
교사는 보수는 받아야 하지만 다스리는 일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 교사가 다스리려 한다면 교회는 곧 하나의 몸이 아니라 기업체나 아니면 완연한 관료제가 숨쉬는 공공기관이 되고 말 것이다. 공동체에는 관료주의보다 더 파괴적인 것은 없다.
한국교회는 '주의 종'이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사용한다. 만일 주의 종들이 그들의 주의 모범을 따라 성도들의 발을 씻기며 교회의 종이 되기를 시작한다면 공동체 회복엔 희망의 서광이 비쳐올 것이다.
만일 목회자들이 그들의 평신도들이 삶의 현장에서 부딪치는 타협의 유혹들로 인하여 고통 당할 때 기꺼이 그들을 지원해주는 일에 평소의 마음이 가 있다면 - 나는 지금 세력 경쟁을 하고 있는 어떤 야심 찬 교단의 선배 목회자를 지원해주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 바로 거기서 공동체의 갱신은 피어날 것이다. 교회의 지체들이 시장에서, 회사에서, 개인사업체에서, 공장에서, 논밭에서, 정부기관 사무실에서, 정치활동에서 바로 크리스찬으로서 살아가기를 힘쓸 때, 그리고 그런 삶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피차 권면 할 때에, 그들이야말로 참으로 한국교회에 공동체의 회복을 가져다줄 사람들이 될 것이다.
http://jeondo.org/making/community04.php?PageNum=030204 이곳에서 발췌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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